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제의 이름을 잇다/등장인물 (문단 편집) === 그 외 인물 === --이만큼이나 죽었으니 나라가 망할 만하다..-- * '''[[김흠돌]]''' 김유신이 연이은 실패에 쓰러진 이후 신라군을 운용하던 신라 병부령. 백제가 국원을 점령하자 전군을 이끌고 국원으로 나아가 결전을 벌일 것을 주장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이후 행적은 나타나지 않으나 부여풍이 최종 결전에서 승리하면서 신라를 점령하고 대부분의 진골들의 씨를 말렸기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 '''[[김흠순]]''' 김유신의 동생. 고사부리 전투에서 패퇴하던 김품일의 군대를 구원하러 나아갔다. 이후 삼년산성에서 백제군이 야습을 하자 전력을 다해 막으려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하고 말았다. * '''[[김품일]]''' 신라 대당 총관. 총대장으로서 고사부리 전투를 지휘하였으나 처참하게 패배하였다. 백제가 국원을 점령하자 김흠돌과 다르게 소백산맥 내부에 방어선을 구축해 항전할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백제와의 최종 결전에서 보군을 이끌고 마지막까지 싸웠지만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사하였다. * '''[[김인문(신라)|김인문]]''' 김춘추의 작은 아들. 당과의 외교 사신으로서 활동하였고 2차 고당전쟁 시기 김유신의 군량 운송 군대에도 합류해 종군하였다. 그러나 함정을 역이용한 백제군에게 걸려 사망하였다. * '''[[https://ko.wikipedia.org/wiki/김양도|김양도]]''' 신라의 부총관. 진현성에서 패퇴한 김춘추에게 백제와의 야전을 유도하기 위해 고사부리 인근으로 나아갈 것을 주창하여 허락받았으나, 패배하여 후퇴하였다. 이후 김인문과 같이 2차 고당전쟁시기 고구려령 내에서 백제군에게 역포위를 당하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0657|김진주]]''', '''김진흠(金眞欽)''' 신라의 고위 장수 형제. 김품일이 고사부리 전투를 벌일 무렵 김춘추를 호위하며 금마저의 절에서 지냈다. 그러나 김품일이 고사부리 전투에서 대패해 버려 김춘추를 데리고 백제의 반군들을 힘들게 물리치며 신라로 달아났다. 결국 퇴각 도중 김춘추는 사망하였고, 이에 책임을 지고 새로 즉위한 김법민에게 처형당한다. * '''[[김원술]]''' 김유신의 맏아들. 작중 앳된 나이였으나 김유신이 부여풍 암살에 실패하고 죽자 함께 자결한다. * '''[[천존]]''' 신라의 상장. 탄현 전투에서 선봉장을 맡았고 이후의 여러 전투에도 빠지질 않았다. 국원 인근 백제와의 최종 결전에서 흑치상지에 의해 보병이 함몰되자 어떻게든 진형을 다시 구축하려 애썼으나 포위된 끝에 전사하고 말았다. * '''[[죽지]]''' 신라의 화랑. 백제 멸망전에서 웅진성 포위전에 참전했으나 계백의 돌격에 힘을 쓰지 못했다. 이후 2차 고당전쟁 시기엔 김유신의 군량 보급 부대의 후방에 남아서 뒤쫓아온 백제군에 맞섰다. 백제군을 함정으로 유도하여 기습했지만 이미 이를 알고 대기하고 있던 백제 본군에게 역으로 포위당하여 분투를 벌였고, 끝내 흑치상지에게 목숨을 내주었다.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9041|설수진]]''' 6두품이자 설씨 가문의 인재. 백제-신라 최종결전에서 승리한 부여풍이 신라왕 김법민을 데리고 와 항복을 종용하자 친척 설오유와 함께 귀순한다. * '''[[https://ko.wikipedia.org/wiki/박도유|박도유]]''' 신라 한산주의 도독. 부여풍이 국원 전투에서 승리한 후 고구려에 항복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박경한의 조언을 받아들여 백제에 항복해 그 보답을 받는다. * '''[[필부]]''' 신라의 칠중성을 수비하던 장수. 사비가 함락당하자 연개소문이 군을 일으켜 칠중성을 쳤고, 원 역사대로 칠중성을 지키지 못하고 전사한다. 김춘추는 그의 전사 소식을 듣고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고, 이는 결국 부여풍이 진현성을 지키는데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 '''[[의상(신라)|의상]]''' 원효의 친우. 황룡사에 피신하라는 부여풍의 권유를 거절하고 서라벌 내에 남아 원효의 소신공양을 도와주었다. 대당전쟁이 끝나고 부여풍이 연 인왕백고좌회의 100명의 고승 중 한 명으로 참가하였다. * '''김대토(金大吐)''' 신라의 진골 귀족. 백제를 막기 위해 [[달구벌]]에 나선 김유신을 사로잡고 부여풍에게 항복했으나, 김유신이 일으킨 부여풍 암살 미수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되어 처형당하고 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